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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무죄 선고...위헌심판은 `기각'인터넷에 정부 정책과 관련한 허위 사실을 게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미네르바' 박대성씨(31)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는 20일 "검찰측 증거와 (외환당국자들의) 증언만으로는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해 범죄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된다"며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유 판사는 "글의 표현 방식이 과장되거나 정제되지 않은 서술이 있더라도 당시 피고인이 게시글의 내용이 전적으로 허위의 사실이라고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유 판사는 이어 "설사 허위라는 인식이 있었더라도 피고인의 글이 달러 매수량 증가 등에 일부 영향을 미친 점은 인정되지만 이를 개량화할 수 없고 단순한 개연성에 불과해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유 판사는 박씨측이 "전기통신기본법 47조1항이 '공익'의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난다"며 제기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은 기각했다. 유 판사는 "47조1항이 금지한 '허위의 통신'이란 전기통신기본법의 전체적인 입법취지상 '전기통신설비를 이용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따라서 허위의 통신이라는 구성요건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의미로 '공익을 해할 목적'을 규정한 만큼 해당 조항이 명확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지난해 7월30일 '외환보유고에 문제가 생겨 외환예산환전업무가 전면 중단됐다'는 글과 지난해 12월29일 '정부가 긴급업무명령 1호로 달러 매수를 금지할 것을 긴급 공문 전송했다'는 글을 다음 아고라에 올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앞서 검찰은 "국민 불안심리를 노골적으로 자극시키고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박씨에게 1년6월을 구형했다. /cgapc@fnnews.com최갑천기자 우리가 걸어온 날들
지금은 바야흐로 격변기이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건지, 혹은 어디에서 온 건지, 이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격동의 시간이기는 한데, 사실 이 변화는 ‘열정’과는 상관없어 보인다. 시간을 100년쯤 뒤로 돌려서 세계사를 본다면, 그 시기에는 사회주의를 만들고자 하던 사람들 아니면 그와는 또 다른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불과 100년 전, 사람들은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혁명을 믿었든, 아니면 인류의 영원한 영광을 믿었든, 이데올로기가 되었든 아니면 예술이 되었든,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배운 사람일수록 더 열정적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열정적인 사람들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물어 보인다. 노벨 경제학상, 주거나 말거나, 시큰둥하게 있던 크루그먼은 그나마 조금 열정적으로 글이라도 쓴 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기에 열정적으로 무엇인가 해보거나,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려고 하는 사람은 한국에는 거의 없어 보이고,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물어 보인다. 아, 우리 모두는 지금 자그마한 보트에 매달려, 내가 탄 보트가 가라앉을 것인가, 아니면 버틸 것인가, 그런 거나 재고 있는 가여운 ‘보트 피플’ 같아 보인다. 한국의 가장 보수적인 경제단체라고 할 수 있는 자유기업원에서 최근 경제학자 51명에게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서 물어보았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회복되는 데에 2~3년은 걸린다고 답한 경제학자들은 72.5% 정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정부가 말하고 있듯이, 6개월 이내에 회복된다고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연합뉴스》, 2008년 12월 11일). 어지간히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모집단임에는 분명할 듯한데, 이들 중 다수가 지금의 문제는 최소한 2~3년 있어야 풀린다고 답한 건 좀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 농담 삼아 말하기를, 한국에서의 1년은 조선왕조 500년과 같다고 한다. 그만큼 역동적이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사회라는 말이다. 늘 그렇게 살아온 한국 학자들에게는 과학적 분석이나 데이터와는 아무 상관없이 신념과도 같은 낙관론이 있다. “지금은 힘들어도 앞으로는 잘될 거야.”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IMF 경제위기 때에도 경제학자들이 지금처럼 비관적으로 미래를 전망하지는 않았다. 자, 개체발생이 집체발생을 반복한다는 생물학의 가설 하나를 생각해보자. 포유류가 태어날 때, 자궁에서 단세포 동물로 시작해, 양수에서의 바다 생명체 시절을 거쳐 결국 포유류가 된다는 그런 가설에 착안한 것이다. 모든 개체들은 결국 자신의 종의 역사가 거쳐온 진화의 과정을 거쳐온다는 그런 가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내가 어떤 학문적 길을 걸어왔는지 생각해보자. 나는 케인시언이었던 선생님들이 개별적으로 하이에크주의자로 전향하였거나 막 전향하려고 하던 시절, 숨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면서 경제학자로서의 첫 발을 떼었다. 어떻게 보면 대학 1학년 때, 케인스 식으로 사유하기를 배웠던 나는 처음 경제학도가 되었고, 대학 2학년 말 처음 『자본론』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비로소 경제학자가 된 셈이다. 1990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읽고 폴라니의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완벽하게 비주류가 되었다. 마르크스의 세계에서도, 케인스의 세계에서도 안착할 수 없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이미 하이에크의 제자들에게 점령당한 한국에서 10년 동안, “목숨만 붙여다오”라고 말하면서 만신창이가 된 육신을 이끌고, 겨우겨우 마흔의 고개를 넘은 셈이다. 우리 모두는 대개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자본론』에 안착하면서 숨만 겨우겨우 쉬는 금붕어처럼 지난 10년간을 버텼거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케인스의 『일반이론』을 찬양하며 ‘공공성’을 강조하거나 국가주의를 찬미했을 것이다. 슬프게도, 국가주의를 찬양할수록, 바로 옆에는 아주 강렬한 민족주의의 쇼비니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선을 넘을까, 말까, 황우석 사태를 건너면서 정말 어항 바깥으로 뛰쳐나온 금붕어 같았다. 아닌가? 그냥 하이에크의 세계 혹은 그의 제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세계나 이걸 기계적으로 한국에 접목하려고 했던 공병호의 세계에서 행복했었나? 그랬다면, 어떤 경로로든, 지금 『인물과사상』에 실린 이 글을 읽고 있을 까닭이 없을 것이다. 세계가 걸어온 날들 자, 한국이라는 공간을 넘어서, 세계사에서 잠깐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살펴보자. 분명 1929년 대공황을 기점으로, ‘봐, 자본주의는 안 된다고 했잖아’라고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을 ‘철의 법칙’으로 삼던 마르크스의 시대가 있었다. 한국에서도 백남운의 『조선경제경제사』가 화려하게 꽃피던 1933년, 그 마르크스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1945년, 전후 복구와 함께 1974년 1차 석유파동까지, ‘영광의 30년’이라고 불리는 케인스의 시대가 있었다. 크루그먼은 미국 경제사에서 이 시기를 ‘대압착의 시대’라고 부른다(『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참조). 한국 역시 유신경제, ‘개발독재의 시대’를 맞아 케인시언들이 아주 힘을 쓰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시장 과정(market process)’을 강조하던 하이에크의 시대가 열리기는 했다. 시카고학파가 밀턴 프리드먼을 내세우고 전면에 나섰고, 세계화·금융화와 함께 경제학이 ‘정치경제학’으로서 가지고 있던 통찰력과 낭만을 잃어버리는 대신, 잔혹함과 단순함으로 무장하던 시기가 왔다. 특히 마지막 몇 년, 정확히 따지면 1998년 클린턴 탄핵을 주도했던 깅그리치 상원의장이 이끌던 미국 네오콘이 이 마지막 바통을 넘겨받으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아주 잔인하면서도 우울한 10년을 보냈다. 이 시기에는 ‘국지전’이 일반화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같이 모두가 쳐다보던 전쟁 말고도, 아프리카에서는 완전히 전쟁이 일상화되다시피 하였다. 장 지글러의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 제목 그대로 굶주림은 세계적으로 일상화되었고, 슬럼이 지구를 뒤덮게 되었고, 조금만 가난하다 싶으면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그런 시기가 도래하였다. 하이에크가 원래 이렇게 잔인했던 사람일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하이에크도 인도적인 사람이었고, 도의가 땅에 떨어지면 안 된다고 믿었던 사람이라는 것이, 내가 이해하는 하이에크이다. 최근에 출간된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이라는 저서는, 하이에크의 수제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독재자 피노체트의 경제 자문관 출신이었으며, 그가 이 모든 폭력적 경제학의 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 책을 충실하게 읽으면, 어쩌면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해 공병호 등 모든 하이에크의 제자들은 하이에크의 배신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긴, 이런 대가의 제자들은 모두 그런 오명을 늘상 받고는 했다. “모든 마르크스의 제자들은 모두 마르크스의 배신자들이다”를 비롯해서, “모든 케인스의 제자들은 케인스의 배신자들이다”와 같은, “모든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의 배신자들이다”라는 니체식 정식에 우리가 얼마나 익숙한가. 어쨌든 좋든 싫든, 지난 시기의 역사는 몇 명의 대가들이 장식한 세계사이고, 그들의 제자들이 선생들의 위명을 받들어--실제로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열심히 “이래야 한다”라고 외쳤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 남은 건, 하이에크의 실패 이후, 1) 케인스로 돌아가자, 2) 마르크스로 돌아가자, 3) 순수 하이에크로 돌아가자, 이 세 개의 명제만이 남은 듯해 보인다. 물론 아직 정신 못 차리고, “하이에크의 영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혹은 “오바마는 얼굴만 검지, 사실은 하이에크주의자이다”라는 종류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사실 새로운 경제의 흐름이 나올지, 아니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 마르크스-케인스-하이에크의 90년짜리 사이클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순환론적 모습이 자본주의의 미래가 될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아, 그걸 알아야 할 것 아니냐? 이 세기적 패러다임 전환의 순간에, 누가 미래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아, 물론 이런 고상한 얘기들은, 경제라면 대운하 혹은 대운하 비슷한 것만 생각하는, 경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현 정부의 건설주의자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얘기이다. 폴라니와 모스의 텍스트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기이한 공통점은, 원 텍스트가 필요 없는 학자였다는 점이다. “정부가 나서면 된다” 혹은 승수효과와 같은 몇 가지 단어만 알면 케인스는 무한복제가 가능했다.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예전 혹은 지금 케인스를 주장하던 사람들 중에서 케인스의 일반이론이나 그의 화폐론을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이름으로, 자기들 맘대로 해석한 애덤 스미스의 세계를 정말 원저자와 아무 상관없이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가엾은 텍스트 『국부론』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하이에크주의자들 역시 하이에크의 텍스트들을 진짜로 읽은 경우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시장’, ‘감세’, 이 두 단어만 알면 되었고, 여기에 한국식 하이에크 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계화가 대세다” 정도만 필요하다. 아니, 여기에 “‘좌빨’들은 북한으로 가라”는 보조 명제 하나만 더하면 완벽할 것 같다. 뭘 자세히 알 필요도 없고, 최소한 민족주의 극우파로서의 염치도 필요 없는 한국의 하이에크의 제자들은 이렇게 완성된 셈이다. 하여간 이 희한한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하이에크는 황당한 반민족주의적 극우파 버전이 되었다. 케인스도 마찬가지의 운명이었다. 폴 사무엘슨이 정리한 ‘신고전학파 종합(Neo-Classical Synthesis)’이라는 체계에서의 ‘거시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전락한 케인스를 공부하는 데에는 케인스의 텍스트들은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좀 고상하게 한다면 경제원론을 보면 되었고, 더 쉽게 사무엘슨 버전의 고시용 경제학 교과서로도 충분했다. 좀 잔인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린 그런 시대를 살아온 셈이다. 텍스트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핵심 개념 몇 마디만 알면 충분한 것을. 그리고 원저자의 생각과 이념과는 상관없이, 자기 맘대로 응용하고, 그걸 자신을 정당화시키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한 설득의 도구 정도로 케인스나 하이에크가 전락한 것은, 엄연한 사실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해방 이후 원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첫 번째 저자는, 마르크스였던 것 같다. 물론 『자본론』은 아주 많은 학생들과 심지어는 학자들에게도 아주 처치 곤란할 정도로 읽기에도 또 안 읽기도 곤란한 텍스트가 되었다. 1980년대, 아마 많은 사람들은 읽지 않고도 “읽었다”고 ‘뻥’ 치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텍스트를 소장하기는 한 것 같고, 또 읽으려고 노력한 건 사실인 것 같다. 물론 마르크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 『자본론』의 권위는 읽었느냐, 읽지 않았느냐라는 그 차이에서 엄청나게 “멋있다”는 위계로 작동한 것이 사실일 것 같다. 사실 그랬던 것 같다. 그 이후, 1990년대 내내 한국에서 텍스트의 권위는 대단했다. 『자본론』에 뒤이어 푸코의 책들이 휩쓸고 갔고, 그 뒤에 다시 들뢰즈의 책들이 휩쓸면서, 라캉, 네그리 심지어 촘스키까지, 한국에서 비로소 ‘원전 텍스트’들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한국의 사회과학은 한국 사회에 대한 설명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텍스트를 위한 텍스트처럼 작동하는 경향이 좀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결국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모든 텍스트는 일본식 표현으로 ‘사소설’과 자기계발서 혹은 재테크 책들에 모든 권위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좋든 싫든, 모두 하이에크의 제자가 되거나 아니면 시대의 이단아가 된 셈이다. 하이에크의 대안이 있느냐? 마르크스, 아니 그거 말고. 케인스, 아니 그거 말고. 그럼 폴라니? 아니 그건 더더욱 아니지. 이렇게 해놓고, ‘대안’ 타령을 10년 동안 한 셈이다. 참 잔혹한 하이에크의 시대였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그래 솔직히 말하면, 시민이 없는 데도 시민운동을 만들어내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아는가? ‘노동자가 지지하지 않는 노동 정당’, 이 시기가 바로 우리의 하이에크 시대였다. 민중들이 전혀 공감하지 않는 민중미학의 시대, 그게 우리가 걸어온 지난 10년이다. 자, 이제 하이에크의 시대를 뒤로하고 다시 폴라니의 시대가 올 것인가? 오기는 할 것 같다. 이윤율과 교환가치를 중심으로 생각했던 마르크스, 소비와 저축 그리고 정부의 역할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케인스, 그리고 시장은 그 스스로 일종의 ‘과정’으로서 혁신을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라고 믿었던 하이에크, 그들과 전혀 다른 층위의 사유를 제시한 폴라니의 시대가 오기는 올 것 같다. 증여, 호혜성, 혹은 ‘제한적 경제’ 혹은 유사한 인류학적 상상력은, 필시 엄청나게 많은 책, 즉 최소한 100권은 넘는 원전들 그리고 역시 100개는 넘는 후속 학자들의 논문들은 좀 읽어줘야 ‘한 말빨’ 하게 만들 것 같은 느낌을 주기는 한다. 여기에 나의 괴로움이 있다. 케인스와 하이에크 시대처럼, 고시용 경제학 교과서 한 권으로 날탕으로 이 거장들을 단순 암기하면서도 잘도 응용하던 개발독재의 옹호자들 앞에서, “자, 여러분은 이제부터 죽었다고 복창하시고, 이제부터 100권의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라는 텍스트의 바다에 빠지게 하고 싶지도 않다. 자, 이제부터 열리게 될지도 모르는 폴라니 30년의 시대, 여기에서 도대체 한국은 어떻게 해야 지난 세 번의 경제 거장의 시대에 발생했던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던 참상을 그런 대로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을까? 텍스트는 읽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텍스트에 매몰되지 말라는, 그런 하나마나한 얘기를 다시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 세 가지 영역의 질문들… 최근 모스를 키워드로 하는 국제학회는 가히 폭발 직전이고, 해외에서 폴라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이건 비단 유럽이나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고, 일본 학계에서도 유사한 흐름은 감지된다. 물론 한국인도 워낙 이런 수입에는 보통 아닌 민족이므로, 조만간 한국에서도 폴라니 열풍이 시작될 것이다.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민주당이 3년 전 ‘공정무역(Fair Trade)’이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울 때, 이 언어의 뿌리가 된 폴라니의 세상이 올 것이라고 직감한 사람은 많다. 아마 나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여러 거장 중에서, 지금까지 뒤로 밀려나 있던 칼 폴라니가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라는 원텍스트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되고, 그 속에서 케인스주의자들과 하이에크주의자들이 갈등하면서도 공존하는 형태가, 아마 앞으로 30년간 세계 경제의 주요 담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미 UNDP(유엔개발계획)나 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와 같이 제3세계를 주요 활동무대로 움직이는 UN 기구들, 아니면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키워드로 생각하는 여러 기구들이 이미 수년 전부터 폴라니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한국식 승자독식이라는 말도 안 되는 현 상황, 그리고 끔찍한 중앙형 시스템과 오히려 더욱 강화되는 마초주의 자본주의가, 폴라니를 만나면서 어쨌든 ‘자기 조율적 작용’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뉴 레프트의 실제 사회적 운동을, 그저 텍스트에 대한 권위로 대체시켜버렸던 1990년대의 ‘포스트모던’의 끝없는 ‘텍스트 위한 텍스트’의 학술활동을 10년이나 지난 지금, 뼈저린 ‘강화된 신자유주의’의 악몽을 맛본 지금, 다시 반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사실 맹아는 1990년대 중후반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한 적이 있다. 유럽에서의 경제인류학을 향한 학계의 흐름, 그리고 미국에서의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를 경제학과와 독립된 별도의 학과로 만들려던 시도는, 네오콘의 강화에 따른 지난 10년간의 역풍에 맞서서 좌절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완전 불임이 된 것은 아니다. 제3부문 제4부문 혹은 사회적 경제 등 그 시기에 뿌려진 활동들이 10년간 숨죽여 있다가 지금 다시 튀어나오려고 하는 순간이다. 당연히 논문을 비롯한 저작들은, 책장 몇 개를 채울 정도로 차고도 넘친다. 당장 나에게도 책장 하나를 넘을 만한 논문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걸 다 읽고 나야 폴라니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할 생각이, 나는 전혀 없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 그리고 그걸 잘 찾아내서 사회적으로 논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폴라니적인 것이고, 모스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 생태, 젠더, 지역성. 일단은 그 세 가지가 폴라니 시대에 한국인으로서 어딘가에 휩쓸려가지 않으면서 우리 식의 문제풀이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생태적인 사유는 이 상황에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성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의 눈이 아니라 지역의 눈으로 본다면 사물은 어떻게 보일까, 그것이 경제인류학의 ‘호혜성’의 출발점일 것 같다. 하이에크 시대, 우리는 수도권에 사는 40~50대 부유층의 눈을 빌어 세상을 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눈과, 사실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눈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아닐까? 하여간 좋든 싫든, 이제 우리는 다시 새로운 시대로 가는 것 같다. 참, 박세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잠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가 한국에서 ‘우파 버전’의 공동체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깜빡깜빡 까먹는다. 그가 만든 프레임으로 10년 만에 우파들이 정권을 가지고 갔는데, 제일 먼저 박세일의 흔적을 지웠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경제위기를 맞았다는 것들, 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9년 1월 호에 실렸습니다. 대법원 1983.4.2. 자 83모8 결정 【형실효선고·각하결정에대한재항고】
[집31(2)형,40;공1983.6.1.(705),841] -------------------------------------------------------------------------------- 【판시사항】 가..형법 제65조 소정의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의 의미 나. 형집행 종료 후 7년 이내에 집행유예의 판결을 받고 유예기간이 경과된 경우 형실효 선고의 가부 【판결요지】 가.형법 제65조 소정의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는 취의는 형의 선고의 법률적 효과가 없어진다는 것일 뿐 형의 선고가 있었다는 기왕의 사실 자체까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나. 형의 집행종료 후 7년 이내에 집행유예의 판결을 받고 그 기간을 무사히 경과하여 7년을 채우더라도 형법 제81조의 “형을 받음이 없이 7년을 경과”하는 때에 해당하지 아니하여 형의 실효를 선고할 수 없다. 【참조조문】 가.형법 제65조/ 나.제81조 【전 문】 【재항고인, 피고인】 재항고인 【원 결 정】 광주지방법원 1983.2.8 자 82로1 결정 【주 문】 재항고를 기각한다. 【이 유】 재항고이유를 본다. 원심이 적법하게 확정한 바에 의하면 재항고인은 광주지방법원에서 1974.5.11에 선고한 동 법원 74노157 판결이 1975.7.8 대법원의 상고기각 판결에 의하여 확정됨으로써 명예훼손죄와 계엄법위반죄에 대한 각 징역 3월의 형이 1975.7.8 집행종료되고 다시 1981.7.10 광주지방법원에서 사문서위조, 동행사 등 피고사건으로 징역 6월에 1년간 집행유예의 확정판결을 받었다는 것이므로 위 명예훼손 및 계엄법위반 피고사건에 관하여 확정된 형의 집행을 종료하료하고 7년 이내에 다시 위 사문서위조 등 피고사건으로 형의 선고를 받었음이 역산상 명백하여 이건 신청이 형법 제81조가 정하는 형의 실효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는 취지의 원심판시는 정당하고 이에 아무런 위법이 없다. 형법 제65조가 정하는 집행유예의 선고를 받은 후 그 선고의 실효 또는 취소됨이 없이 집행유예기간을 경과한 때에는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는 취의는 형의 선고의 법률적 효과가 없어진다는 것일 뿐 형의 선고가 있었다는 기왕의 사실 자체까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므로 위 전단의 집행유예기간을 무사히 경과하여 형의 선고자체가 효력을 상실함으로써형법 제81조가 정하는 7년의 기간이 경과한 것이라는 소론 논지는 독자적 견해에 지나지 아니하여 채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재항고를 기각하기로 관여법관의 일치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대법관 이일규(재판장) 이성렬 전상석 이회창 거래상 약속어음을 받을 경우 은행에서 지급된 용지의 정식 약속어음이 아니라 문구점에서 파는 약속어음 용지에 서명날인 받은 약속어음을 받을 경우가 있습니다.
이른바 문방구 어음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Q] 수원에 사는 오씨는 철물점을 경영하는데 갑에게 건축자재를 판매하면서 갑으로부터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약속어음용지에 발행인을 갑, 지급일자는 발행일로부터 1개월 후, 액면금 2,000만원으로 기재된 것을 교부받았습니다. 그러나 갑이 위 지급일자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려고 하는데,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약속어음은 그 효력이 없어 약속어음금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일까요? 답변보기 관련기사
【대법원 2005-07-21 선고 2002다1178 종회회원확인】 【판결요지】 종원자격을 성인남자로 제한한 종래관습은 사회환경과 국민의식의 변화로 법적확신이 상당히 약화됐으며 개인존엄과 양성평등을 기초로 한 전체 법질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한 종중의 본질에 비추어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은 성의 구별없이 성년이 되면 당연히 그 구성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당 사 자】 원고, 상고인 A 외 4인 피고, 피상고인 용인 이씨 사맹공파 종회(龍仁李氏司猛公派宗會) 【원 심 판 결】 서울고등법원 2001. 12. 11. 선고 2001나19594 판결 【판 결 선 고】 2005. 7. 21. [이유]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 [주문] 1. 원심판결의 요지 원심은, 피고는 용인 이씨 시조 길권의 18세손 말손을 중시조로 하는 종중이고, 원고들은 말손의 후손인 여성들로서 용인 이씨 33세손이며, 피고의 종중규약 제3조에 ‘본회는 용인이씨 사맹공(諱 末子 孫子)의 후손으로서 성년이 되면 회원자격을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 위 규약에서 회원 자격을 남자로 제한하고 있지 않으므로 원고들도 피고 종회의 회원(종원) 자격을 갖는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하여, 종래 관습상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인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으로서 혈족이 아닌 자나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고,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는 자에게 종원의 자격을 부여하는 종회의 결의에 따라 제정된 회칙은 종중의 본질에 반하여 부적법하다는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비록 피고의 종중규약이 회원의 자격을 명시적으로 남자로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여성도 피고 종회의 회원 자격을 갖는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하여 이를 배척하고, 나아가 피고가 관습상의 종중과 다른 종중 유사단체에 해당한다는 원고들의 주장에 대하여도, 피고의 종중회의에 여성들이 참석한 적이 없었던 점과 종중은 성년의 남자를 구성원으로 하여 자연적으로 성립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피고가 종중규약을 통하여 피고 종중을 관습상의 종중과는 다른 종중 유사의 사단으로 변경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하여 이를 배척하였다. 2. 대법원의 판단 가. 종중에 대한 종래의 대법원판례 종래 대법원은 관습상의 단체인 종중을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하여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를 종원으로 하여 구성되는 종족의 자연적 집단이라고 정의하면서, 종중은 공동선조의 사망과 동시에 그 자손에 의하여 성립되는 것으로서 종중의 성립을 위하여 특별한 조직행위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반드시 특별하게 사용하는 명칭이나 서면화된 종중규약이 있어야 하거나 종중의 대표자가 선임되어 있는 등 조직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고, 종원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당연히 종중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어서 종원 중 일부를 종원으로 취급하지 않거나 일부 종원에 대하여 종원의 자격을 영원히 박탈하는 내용으로 규약을 개정하는 것은 종중의 본질에 반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혈족이 아닌 자나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나. 관습법의 요건 관습법이란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한 사회생활규범이 사회의 법적 확신과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 승인·강행되기에 이른 것을 말하고, 그러한 관습법은 법원(法源)으로서 법령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법칙으로서의 효력이 있는 것이며(대법원 1983. 6. 14. 선고 80다3231 판결 참조), 또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한 어떤 사회생활규범이 법적 규범으로 승인되기에 이르렀다고 하기 위하여는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전체 법질서에 반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그렇지 아니한 사회생활규범은 비록 그것이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법적 규범으로 삼아 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3. 7. 24. 선고 2001다48781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따라서 사회의 거듭된 관행으로 생성된 사회생활규범이 관습법으로 승인되었다고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이 그러한 관행의 법적 구속력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않게 되었다거나, 사회를 지배하는 기본적 이념이나 사회질서의 변화로 인하여 그러한 관습법을 적용하여야 할 시점에 있어서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러한 관습법은 법적 규범으로서의 효력이 부정될 수밖에 없다. 다.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 제한하는 종래 관습법의 효력 (1) 종중에 대한 사회일반의 인식 변화 종중은 조상숭배의 관념을 바탕으로 제사를 일족일가(一族一家)의 최중요사(最重要事)로 하는 종법사상(宗法思想)에 기초한 제도로서, 조상에 대한 제사를 계속 실천하면서 남계혈족(男系血族) 중심의 가(家)의 유지와 계승을 위하여 종원들 상호간에 긴밀한 생활공동체를 달성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성립되었으며,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는 종래의 관행은 이러한 종법사상에 기초한 가부장적, 대가족 중심의 가족제도와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한 농경중심의 사회를 그 토대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1970년대 이래의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산업화·도시화의 과정에서 교통과 통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인구가 전국적으로 이동하면서 도시에 집중되며 개인주의가 발달하는 한편 대중교육과 여성의 사회활동참여가 대폭 증대되고 남녀평등의식이 더욱 넓게 확산되는 등 사회 환경이 전반적으로 변화하였고, 이에 따라 가족생활과 제사문화 등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가 있게 되었다. 가족생활에서는 부모와 미혼의 자녀를 구성원으로 하는 핵가족의 생활공동체를 바탕으로 출산율의 감소와 남아선호(男兒選好) 내지 가계계승(家系繼承) 관념의 쇠퇴에 따라 딸만을 자녀로 둔 가족의 비율이 증가하게 되었고, 부모에 대한 부양에 있어서도 아들과 딸의 역할에 차이가 없게 되었으며, 핵가족의 확산 등에 따라 과거의 엄격한 제사방식에도 변화가 생겨 여성이 제사에 참여하는 것이 더 이상 특이한 일로 인식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위한 국토이용계획의 수립과 묘지제도의 변화로 화장(火葬)이 확산됨에 따라 조상의 분묘수호를 주된 목적의 하나로 하는 종중의 존립기반이 동요될 수 있는 요인이 생겼고, 개인주의의 발달과 함께 조상숭배관념이 약화됨으로써 종중에 대하여 무관심한 현상이 일부 나타나고 있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교통·통신의 발달, 경제적 생활여건의 개선과 더불어 자아실현 및 자기존재확인 욕구의 증대 등으로 종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현상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된 사회현실은 종중의 구성원에 대한 국민의 인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는바, 종중이 종원의 범위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일족의 시조를 정점으로 그 자손 전체의 혈통, 배우자, 관력 등을 기재하여 반포하는 족보의 편찬에 있어서 과거에는 아들만을 기재하는 경우가 보통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딸을 아들과 함께 기재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고,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입각한 가부장적 남계혈족 중심의 종중 운영과는 달리 성년 여성에게도 종원의 지위를 부여하는 종중이 상당수 등장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종원인 여성이 종중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종중들도 출현하게 되었다. 결국 위와 같은 사회 환경과 인식의 변화로 인하여 종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만 제한하고 여성에게는 종원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종래의 관습에 대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던 법적 확신은 그것이 현재 소멸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상당 부분 흔들리거나 약화되어 있고, 이러한 현상은 시일의 경과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2) 우리 사회 법질서의 변화 우리 헌법은 1948. 7. 17. 제정 시에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이며 성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선언하였으나, 가족생활관계를 규율하는 가족법 분야에서는 헌법에서 선언한 남녀평등의 원칙이 바로 반영되지는 못하였다. 그 후 1980. 10. 27. 전문 개정된 헌법에서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는바, 이는 유교사상에 의하여 지배되던 우리의 전통적 가족제도가 인간의 존엄과 남녀평등에 기초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이 추구하는 이념에 맞는 가족관계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헌법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한편, 1985. 1. 26.부터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된 유엔의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 함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시민적 또는 기타 분야에 있어서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이 남녀동등의 기초 위에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인식, 향유 또는 행사하는 것을 저해하거나 무효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별에 근거한 모든 구별, 제외 또는 제한을 의미한다고 규정하면서, 위 협약의 체약국에 대하여 여성에 대한 차별을 초래하는 법률, 규칙, 관습 및 관행을 수정 또는 폐지하도록 입법을 포함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과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근거한 편견과 관습 기타 모든 관행의 철폐를 실현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였다. 그리고 1990. 1. 13. 법률 제4199호로 개정되어 1991. 1. 1.부터 시행된 민법은 가족생활에서의 남녀평등의 원칙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헌법정신을 반영하여 친족의 범위에 있어서 부계혈족과 모계혈족 및 부족인척(夫族姻戚)과 처족인척(妻族姻戚) 사이의 차별을 두지 아니하고, 호주상속제를 폐지하는 대신 호주승계제도를 신설하면서 실질적으로 가족인 직계비속 여자가 호주승계인이 되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주재(主宰)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재산상속분에 있어서도 남녀의 차별을 철폐하였다. 또한, 1995. 12. 30. 법률 제5136호로 제정되어 1996. 7. 1.부터 시행된 여성발전기본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남녀평등을 촉진하고 여성의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여, 모든 국민은 남녀평등의 촉진과 여성의 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남녀평등의 촉진, 여성의 사회참여확대 및 복지증진을 위하여 필요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책무를 지며, 여성의 참여가 현저히 부진한 분야에 대하여 합리적인 범위 안에서 여성의 참여를 촉진함으로써 실질적인 남녀평등의 실현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나아가 2005. 3. 31. 법률 제7428호로 개정된 민법은, 호주를 중심으로 가(家)를 구성하고 직계비속의 남자를 통하여 이를 승계시키는 호주제도가 남녀평등의 헌법이념과 시대적 변화에 따른 다양한 가족형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호주에 관한 규정과 호주제도를 전제로 한 입적·복적·일가창립·분가 등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고, 자녀의 성(姓)과 본(本)은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혼인신고 시 부모의 협의에 의하여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를 수도 있도록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3) 종중 구성원에 관한 종래 관습법의 효력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종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만 제한하고 여성에게는 종원의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종래 관습에 대하여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던 법적 확신은 상당 부분 흔들리거나 약화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헌법을 최상위 규범으로 하는 우리의 전체 법질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한 가족생활을 보장하고, 가족 내의 실질적인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두지 아니하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남녀평등의 원칙은 더욱 강화될 것인바, 종중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봉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을 목적으로 형성되는 종족단체로서 공동선조의 사망과 동시에 그 후손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성립하는 것임에도, 공동선조의 후손 중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고 여성은 종중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종래의 관습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봉제사 등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으로서, 위와 같이 변화된 우리의 전체 법질서에 부합하지 아니하여 정당성과 합리성이 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만으로 제한하는 종래의 관습법은 이제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라. 종중 구성원의 자격 민법 제1조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성문법이 아닌 관습법에 의하여 규율되어 왔던 종중에 있어서 그 구성원에 관한 종래 관습은 더 이상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으므로, 종중 구성원의 자격은 민법 제1조가 정한 바에 따라 조리에 의하여 보충될 수밖에 없다. 종중이란 공동선조의 분묘수호와 제사 및 종원 상호간의 친목 등을 목적으로 하여 구성되는 자연발생적인 종족집단이므로, 종중의 이러한 목적과 본질에 비추어 볼 때 공동선조와 성과 본을 같이 하는 후손은 성별의 구별 없이 성년이 되면 당연히 그 구성원이 된다고 보는 것이 조리에 합당하다고 할 것이다. 마. 새로운 판례의 적용 시점과 이 사건에의 소급적용 이와 같은 종중 구성원의 자격에 관한 대법원의 견해의 변경은 관습상의 제도로서 대법원판례에 의하여 법률관계가 규율되어 왔던 종중제도의 근간을 바꾸는 것인바, 대법원이 이 판결에서 종중 구성원의 자격에 관하여 위와 같이 견해를 변경하는 것은 그동안 종중 구성원에 대한 우리 사회일반의 인식 변화와 아울러 전체 법질서의 변화로 인하여 성년 남자만을 종중의 구성원으로 하는 종래의 관습법이 더 이상 우리 법질서가 지향하는 남녀평등의 이념에 부합하지 않게 됨으로써 그 법적 효력을 부정하게 된 데에 따른 것일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이 변경된 견해를 소급하여 적용한다면,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 왔던 종래 대법원판례를 신뢰하여 형성된 수많은 법률관계의 효력을 일시에 좌우하게 되고, 이는 법적 안정성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기초한 당사자의 신뢰보호를 내용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원리에도 반하게 되는 것이므로, 위와 같이 변경된 대법원의 견해는 이 판결 선고 이후의 종중 구성원의 자격과 이와 관련하여 새로이 성립되는 법률관계에 대하여만 적용된다고 함이 상당하다. 다만, 대법원이 위와 같이 종중 구성원의 자격에 관한 종래의 견해를 변경하는 것은 결국 종래 관습법의 효력을 배제하여 당해 사건을 재판하도록 하려는 데에 그 취지가 있고, 원고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하여 종래 관습법의 효력을 다투면서 자신들이 피고 종회의 회원(종원) 자격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하여도 위와 같이 변경된 견해가 적용되지 않는다면, 이는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 당사자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법작용의 본질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현저히 정의에 반하게 되므로, 원고들이 피고 종회의 회원(종원) 지위의 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청구에 한하여는 위와 같이 변경된 견해가 소급하여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종중 구성원의 자격을 성년 남자로 제한하는 관습에 법적 규범인 관습법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하고 이를 적용하여 성년 여성인 원고들에게 피고 종회의 회원 자격을 인정하지 아니한 원심의 판단에는 관습법의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3. 결론 그러므로 나머지 상고이유에 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게 하기 위하여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하는바, 이 판결에는 대법원장 최종영, 대법관 유지담, 대법관 배기원, 대법관 이규홍, 대법관 박재윤, 대법관 김용담의 별개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대법관들의 의견이 일치되었고, 대법관 고현철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있다. 4. 대법원장 최종영, 대법관 유지담, 대법관 배기원, 대법관 이규홍, 대법관 박재윤, 대법관 김용담의 별개의견은 다음과 같다. (이하생략) 5. 대법관 고현철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다음과 같다. (이하생략) 재판장 대법원장 최 종 영 대법관 유 지 담 대법관 윤 재 식 대법관 이 용 우 대법관 배 기 원 대법관 강 신 욱 대법관 이 규 홍 대법관 이 강 국 대법관 박 재 윤 주 심 대법관 고 현 철 대법관 김 용 담 대법관 김 영 란 대법관 양 승 태 최근 인터넷을 통해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예술사진이나 그림파일 등을 무단복제해 개인 홈페이지나 포털사이트 등에 전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저작권침해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 손해배상책임을 물은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부(재판장 辛成基 부장판사)는 사진작가 송모씨가 자신의 사진을 인터넷 상에서 무단복제한 김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05나3518)에서 22일 "피고의 저작권 침해행위로 인한 손해액 1백30만원을 배상하라"며 1심대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작가가 홍보를 목적으로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사진작품들은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창작성이 인정되는 예술사진들로 판단된다"며 "피고가 원고의 승낙없이 인터넷 사이트상에 게시된 원고의 사진들을 무단 복제함으로써 사진저작물에 관한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가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거나 타인에게 공개할 의사로 원고의 사진들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사진들만 따로 모아놓고 이를 나중에 감상하고픈 생각에 원고가 게시해 놓은 사진들을 복제하기에 이른 점, 원고가 게시해 놓은 사진들 중 13장만을 복제했던 점, 원고가 피고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형사고소하자 피고가 즉시 디렉토리내 저장해 둔 사진을 삭제한 점 등을 참작해 저작권침해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1장당 10만원씩 1백30만원으로 정한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 2003년8월경 회사동료의 소개로 사진작가 송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마음에 드는 사진 13장을 골라 자신의 디렉토리에 저장했다가 이 사실을 알게된 송씨로부터 저작권법위반으로 고소당해 벌금 20만원을 선고받고,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도 패소했었다.
또 26일 서울고법에서는 인터넷 포털업체가 네티즌들의 검색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엄지손톱 크기의 이미지인 '썸네일(thumbnail)'을 클릭했을 때 큰 이미지가 뜬다면 저작권침해에 해당한다는 판결도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趙龍鎬 부장판사)는 사진작가 이모씨가 자신의 35개 사진작품을 썸네일로 변환해 네티즌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04나76598)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4개 사진에 대한 손해배상금 64만여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4개의 썸네일을 클릭한 후 나타나는 큰 이미지는 원래 사진작품이 갖는 심미감을 상당부분 충족시킬 수 있어 원고 사진작품의 수요를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나머지 31개 썸네일은 네티즌들이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이미지를 단순 목록화 했고 원래 이미지가 보관돼 있는 웹사이트 주소를 표시했다는 점에서 공공성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2003년10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자신이 찍은 풍경사진이 썸네일 형식으로 네티즌들에게 제공되자 손해배상 소송을 냈었다. 오이석 기자 hot@lawtimes.co.kr 기사원문보기 기사원문보기
가압류·가처분 이의·취소재판, 판결에서 결정으로 바꿔 종전 '판결'로 하던 가압류와 가처분에 대한 이의 및 취소신청에 대한 재판방식이 크게 바뀌어 오는 28일부터는 '결정'으로 하게 된다. 또 채무자재산 조회요건이 완화됨에 따라 채무자가 도주해 채권자가 채무자의 주소를 알 수 없는 경우에도 재산조회신청을 할 수 있게 되며, 저임금 근로자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월소득 1백20만원 이하의 근로자들에 대한 급여에 대해서는 압류가 전면 금지된다. 이같은 내용의 개정 민사집행법이 지난 1월27일 공포 이후 6개월의 경과기간을 거쳐 7월28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대법원은 집행절차에서 즉시항고에 대한 재항고절차를 신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민사집행규칙을 마련, 28일 공포하고 즉시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개정법이 종전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도록 한 압류금지물건과 압류금지채권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함에 따라 이와 관련한 민사집행법시행령이 새로 제정돼 26일 공포를 거쳐 28일부터 시행된다. 개정 민사집행법은 과거 판결로 하던 가압류와 가처분에 대한 이의 및 취소재판을 앞으로는 결정으로 하도록 하고 있다(제281조). 이는 그동안 보전처분에 대한 불복절차인 이의·취소사건을 판결절차로 해온 결과 부당한 보전처분을 당한 경우 이를 취소하는데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지적에 따라 불복절차를 간소화한 것으로 앞으로는 부당한 보전처분을 받은 경우 신속한 권리구제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개정법은 보전처분의 취소를 쉽게하는 대신 채권자에게 불측의 손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위해 △이의신청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변론기일 또는 당사자 쌍방이 참여할 수 있는 심문기일을 반드시 1회 열도록 하는 '필수적 변론기일 또는 심문기일 지정제도(286조1항, 288조3항, 307조2항)'와 △당사자로 하여금 심리종결 시기를 예측할 수 있도록해 주장·소명의 기회를 충분히 주도록 하는 '심리종결선언제도(286조2항, 2888조3항)'를 도입했다. 이와 함께 보전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은 판결절차와 달리 결정의 고지에 의해 곧바로 효력이 생기므로 채무자가 집행취소절차를 완료하는 경우에는 채권자의 즉시항고가 인용되더라도 보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채권자에게 즉시항고와 함께 보전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의 효력정지를 신청할 수 있도록하고 법원은 직권으로 2주 이내의 범위에서 효력을 유예하는 선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효력유예선언제도(286조6항,288조3항)'도 마련됐다. 개정법은 또 재산조회절차의 신청범위를 확대해 채권자가 채무자의 주소를 알 수 없는 경우에도 재산조회신청을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74조1항1호). 종래에는 채무자에 대한 재산조회를 하기 위해서는 채무자에게 재산명시명령이 공시송달이나 우편송달 외의 방법으로 송달돼 재산명시절차가 종료될 것이 요구됨에 따라 채무자가 도주하거나 그 밖의 사유로 채무자의 주소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채권자가 재산조회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민사집행규칙에 신설된 재항고 규정(14조의2)에 따르면 재항고 사유는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에 한정하고 재항고는 재판을 고지받은 날로부터 1주 이내에 재항고장을 원심법원에 제출해야 하며(법15조2항), 재항고장을 제출한 날부터 10일 이내에 재항고 이유서를 원심법원에 제출해야 한다(법15조3·4항). 과거 규칙에서는 집행절차에서 즉시항고에 관한 재항고에 관한 명문규정이 없어 실무에서는 이 경우 민사집행법 제15조를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민사소송법의 재항고 규정을 적용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어오다 지난해 대법원의 2004마505 결정에 의해 민사집행법 준용설로 정리됐으며, 대법원은 변호사나 법무사 등 소송관계인들의 절차착오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이번 개정작업 때 규칙에 민사집행법 제15조 규정을 준용하도록 명문규정을 마련한 것이다.한편 새로 제정된 시행령은 압류가 금지되는 1월간의 생계비와 급여채권에 있어서 압류가 금지되는 최저금액을 2005년도 4인가구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해 각각 1백20만원으로 정했다. 또 압류금지채권의 경우 △급여가 1백20만원에서 2백40만원 미만인 때에는 1백2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만 압류를 할 수 있게 하고 △2백40만원 이상 6백만원까지는 급여채권의 2분의 1을 압류할 수 있으며, △6백만원 이상의 고임금 근로자의 경우에는 2분의 1인 3백만원보다 많이 압류할 수 있도록 했다. 정성윤 기자 jung@lawtimes.co.kr 기사원문보기
대법원 무죄원심 파기환송...표현의 자유 둘러싼 논쟁 재연될 듯 대법원이 임신한 아내와 자신의 나체사진 등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중학교 미술교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2심을 뒤집고 일부 유죄를 선고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놓고 큰 관심을 끌어온 이번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림에 따라 법조계와 예술계에서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둘러싸고 또한차례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朴在允 대법관)는 전기통신기본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충남 모 중학교 미술교사 김모씨(43)에 대한 상고심(2003도2911) 선고공판에서 지난 22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일부 유죄취지로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음란성이 있다고 판단한 작품은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6건 중 김씨부부의 나체사진인 '우리부부'와 여성의 성기를 근접 묘사한 '그대 행복한가' 및 남성의 성기를 세밀하게 묘사한 '남근주의' 등 세 작품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고 어느 예술작품에 예술성이 있다고해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작품의 예술적 가치, 주제와 성적표현의 관련성 정도 등에 따라서는 그 음란성이 완화되어 결국은 처벌대상을 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뿐이므로 피고인의 작품들에 예술성이 있다고 해 그 이유만으로 이 작품들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유죄가 인정된 세 작품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사회통념상 허용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주로 호색적 흥미를 돋구기 위한 것이라거나 공연히 성욕을 흥분 또는 자극시키고 또한 보통인의 정상적 수치심을 해하고 선량한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지난 2000년 충남 모 중학교 미술교사로 근무하던 중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만삭의 아내 이모씨와 전라인 상태로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인 '우리부부' 등 6점의 작품을 게시한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었다. 정성윤 기자 jung@lawtimes.co.kr [한겨레 2005-07-27 17:15] [한겨레] 왕자 만나 신데렐라 되기→왕자 데려다 '삼식이' 만들기 여자의 적은 여자→연적의 아픔 어루만지기 상대 파트너와 손잡고 음모꾸미기→함께 화투치며 친구하기 지난 21일 밤 10시, 티브이 앞에 앉은 이들 중 절반이 삼순이와 눈을 맞췄다. 8주라는 길지 않은 시간, 눈귀는 즐겁게 마음은 후련케 했던 삼순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극찬을 받았다. 티브이 드라마라는 한계를 감안할 때, 지금까지 가장 진보한 여성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신데렐라의 혐의를 완전히 벗진 못 했지만, 리얼리티를 세밀하게 살리며 삶의 진정성을 깊이 있게 담아내 공감을 자아냈다. 또한 이로부터 사회적 의제 설정 기능까지 해냈기에 기존 신데렐라 드라마의 신드롬과는 전혀 다른 성과를 냈다. 삼순이와 진헌·희진·헨리의 인간관계를 통해 <내 이름은 김삼순>을 돌아본다. ■ 삼순과 진헌…삼순이는 삼순이=진헌은 외형상 재벌2세이며, 형과 형수를 교통사고에서 잃은 개인적인 아픔을 감추고 있다. 순정만화 속 비련의 남자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삼순이와 진헌의 만남이 신데렐라의 한계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뿌리다. 그리고 평범한 30대 여성 삼순이의 모습에서 비롯한 ‘공감’은 ‘대리만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진헌의 별명은 삼식이. 진헌을 만난 삼순이가 신데렐라로 변신하기에 앞서, 진헌이 삼식이로 몸을 바꾼다. 왕자와 신데렐라가 아닌, 삼식이와 삼순이인 것이다. 레스토랑 사장과 파티시에라는 직업적 특성도 양념의 쓰임새일 뿐이었다. 왕자가 신데렐라를 이끌기보다, 삼순이가 삼식이를 이끄는 역할 변화가 이뤄졌다. 그래서 삼순이는 진헌을 만나고 나서도 이전의 삼순이와 다르지 않다. 더 얌전해지지도 않고, 갑자기 내숭을 떨지도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개명을 둘러싼 심적 갈등을 통해 신데렐라의 고민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지만, 결론은 ‘한 번 삼순이는 영원한 삼순이’라는 것이다. 삼순이의 마지막 대사를 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 투닥투닥 싸우고 화해하고, 웃고, 울고, 연애질을 한다.…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명백하다. 열심히 케이크를 굽고 열심히 사랑하는 것.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나 김삼순을 사랑하는것.” ■ 삼순과 희진…자매애의 발견=삼순이와 희진의 관계는 이 드라마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진헌을 가운데 둔 연적 관계인 삼순과 희진 사이에 일종의 자매애가 엿보이는 것이 그렇다. 기존 드라마와 다른 <내 이름은 김삼순>의 돋보이는 성취다.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울 만큼 둘 모두 진헌과의 사랑에 열정적이지만, 틈틈이 고민에 빠지는 것은 상대방에게 그 사랑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 드라마에서 결코 화해에 이르지 못하던 연적 관계의 두 여성이 자매애로 묶일 수 있었다. 아픈 희진을 위해 삼순이가 음식을 준비하는 장면이나, 미국으로 떠난 희진이 삼순에게 전화를 걸어 “가게가 잘 될 것”이라고 축복하고 삼순이도 “좋은 의사가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내는 장면은 다른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연적 사이의 남성들이 의기투합해 건전한 경쟁을 약속하는 유치한 장면들은 어렵잖게 볼 수 있었지만, 같은 처지에 놓인 두 여성이 각각의 아픔을 넘어서 서로 이해하며 연대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잘 안다”는 삼순의 말처럼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시청자들 또한 신데렐라의 대리만족에 머물지 않고, 삼순과 희진에 감정이입하며 자매애를 느낄 수 있었다. 삼순이의 팬들이 삼순과 희진, 어느 편도 들지 못하고 고민했던 까닭이다. ■ 삼순과 헨리…소통의 가능성=헨리와의 관계속에서도 <내 이름은 김삼순>의 뛰어난 점을 엿볼 수 있다. 헨리가 진짜 왕자였다. 희진의 생명을 구하고 헌신적인 사랑까지 아낌없이 바치는 미국 의사. 게다가 희진에게 집착하지 않는 쿨함까지 갖췄다. 뭇 여성들이 꿈꿈직한 완벽한 보호자인 헨리와 삼순이의 관계는 이 드라마에서 상대적으로 덜 강조되지만 매우 특이하다. 헨리는 삼순이를 미워하지 않고, 삼순이는 헨리에게 희진을 낚아채라고 추동질하지 않는다. 기존 드라마와 다르다. 흔히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과 맺어지고자 하는 욕망 탓에 함께 음모를 꾸미게 하거나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소, 닭 쳐다보듯’ 하는 관계였다. 그러나 오히려 진헌과 희진이 오해를 풀고 재회를 하는 동안, 삼순과 헨리는 마주 앉아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나누며 소통을 시도한다. 언어가 달라 뜻이 어렵게 전달되지만, 삼순은 “마이 네임 이즈 소피”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섹시 쿠키’라는 ‘콩글리쉬’로 헨리를 웃긴다. 삼각관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삼순이는 희진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고 난 뒤에도 헨리와 화투를 친다. 말이 통하지 않고 외국인인데다, 애정 관계로 직접 얽히지 않은 타인이 함께 어울리고 자신을 알리려 애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완전한 타인’과의 소통의 가능성이 드러난다. 사랑에 애태우지만 다른 인간관계도 중요하게 여기는 성숙함과 여유로움을 지닌 삼순이의 진면목이 헨리와의 관계 속에서 그려진 것이다. 삼순이가 소통하려 하는 대상이 이처럼 넓다는 것을 보여줬다. “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주인공 네명이 꼽은 ‘명대사’ 드라마 종영 기자간담회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 많은 인터뷰 제안을 일일이 들어줄 수 없어, 기자를 한 데 모이게 했단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태평로의 한 호텔에 김선아, 현빈, 정려원, 대니얼 헤니가 모였다. 하나같이 기쁨에 들떠 상기된 표정이었다. 김선아는 “당장 레스토랑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면서도 “된장찌개 같이 구수한 느낌의 삼순이를 연기하겠다던 애초 약속은 지킨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삼순이를 통해 성숙해졌다며 흐뭇해했다. “내면이 뭔가 풍요로워진 느낌이에요. 콤플렉스가 있고 소외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솔직해야 내일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드라마로 한 거잖아요. 그래서 나도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현빈은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배우가 드라마에서 자신이 아닌 캐릭터로 남는게 참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삼식이로 남아 뿌듯한 거죠.” 지난 드라마 <아일랜드>의 강국 역이 강한 탓에 이미지 변신에 부담스러웠지만, 나름대로 삼식이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다는 자평이다. . 무엇보다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이는 정려원과 대니얼 헤니다. 특히 연인을 잃은 슬픔을 절절히 연기해낸 정려원은 “동료 연기자들을 잘 만난 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털어놨다. “드라마가 시트콤과 많이 달라 긴장을 많이 했었어요. 아직도 긴장이 안 풀리네요. 아직도 제가 희진인 것 같아요….” 첫 드라마로 큰 성공을 거둔 대니얼 헤니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굉장히 좋은 기회였어요. 친구들을 통해 언어 장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쁩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삼순이가 상상 속 아버지와 술을 마시면서 “내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라고 했던 대사를 명대사로 꼽았다. 특히 이들은 “너무 좋아서, 너무 행복해서 그런데 깨질까봐 너무 겁이나 죽겠어”라는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성공한 기쁨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기사원문보기
2005-07-15 03:10 유아영어 경험담을 나누는 쑥쑥닷컴 회원들. 이들은 5년간 쌓아 놓은 경험담을 최근 ‘영어야,놀자’(한울림)라는 책으로 펴냈다. 왼쪽부터 김소영 백미진 박진희 서현주 황명진 씨. 박영대 기자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 영어교육에 목을 맨다. 영어의 필요성은 말할 것도 없고 영어에 대해 자신이 받았던 스트레스에 대한 기억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종일제’ 엄마의 경쟁력이 돋보이는 분야가 바로 영어교육. 그러나 경험이 없는 엄마들로서는 언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무료 유아영어 교육정보사이트 ‘쑥쑥닷컴’(www.suksuk.com)은 2000년 6월 이러한 엄마들이 모여 만들었다. 지난 5년간 경험에서 우러나온 교육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였고 엄마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회원은 30만 명을 헤아린다. 엄마들 사이에 유아영어 ‘지존’으로 통하는 설립자 서현주 씨는 “영어육아 경험담을 다른 엄마들과 나누고 싶어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고 엄마들의 호응 속에 주부동호회로, 다시 포털 사이트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 주부 황명진 씨는 당시에는 서버용량이 작아 다운되기 일쑤였고 그만큼 힘들게 얻은 정보라 소중했다고 회상했다. “영어를 학습지 선생님에게 맡기기는 싫었습니다. 아이가 평생 쓸 영어인데 재미있게 배워야 오래 공부하죠.” 유아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습득’이라는 것이 이들의 생각. 유아에게 교사는 공부를 시키지만 엄마와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조기학습에 대한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도 컸다. 엄마들이 개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유아영어 교육법이 인터넷이라는 고리를 만나 체계를 만들어갔다는 것이 서 씨의 분석이다. 백미진 씨는 중학교 수준의 영어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유아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사이트에 ‘피기맘의 육아일기’를 올려 놓는 백 씨는 선배 엄마들의 경험담이 가장 좋은 교과서라고 덧붙였다. 김소영 씨는 “연년생 아이 둘을 보며 하루 종일 집에 있는데 큰애가 두 돌 무렵 ‘옷 입자’ ‘신발 신자’ 정도의 영어를 2주간 매일 반복했다”며 “2주 후 아이가 알아듣기에 신기해 경험담을 올려 놓았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엄마들의 질문에 답변을 올리다 아예 ‘다이어리’ 메뉴를 맡게 된 김 씨는 “유아 수준의 생활영어는 책 한 권 외우면 엄마가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고 전하면서 “나는 세 발짝 더 간 사람”이라고 말한다. 김 씨는 아예 아이 수준에 맞추기 위해 방송통신대 영문과에 등록했다. 박진희 씨는 잘 따라하던 아이들도 유치원에 들어가서 고비를 맞는다고 전했다. “큰애가 왜 우리집에는 영어책만 있느냐고 투정을 부리더니 우리말 책 읽은 데 빠졌어요. 그 뒤 영어책을 더 재미있게 읽어줬더니 다시 관심을 보였고요. 뭐니뭐니 해도 칭찬이 가장 좋은 교수법이죠.” ‘엄마’표 영어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얼마만큼 영어를 할 수 있을까. 서 씨의 초등 4학년생 아들은 고학년용 영어책을 재미있게 읽고 초등 2학년생 딸은 미국인 친구와 대화할 수 있을 정도. 박 씨의 경험담. “영어동화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데 아이 아빠가 초등 1학년 아들한테 ‘뭐라는 거야’라고 물어요. 정확한 아들의 대답에 남편으로부터 ‘이렇게 키워줘 고맙다’는 칭찬까지 받았어요.” 박 씨는 “그 후 아이교육에 대한 결정권을 갖게 됐다”고 귀띔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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